솝힙 피치

Sopheap Pich

솝힙 피치는 캄보디아에서 구할 수 있는 대나무, 라탄, 삼베, 밀랍, 흙 안료와 같은 현지의 소재를 활용하여, 신체 기관, 식물 형태, 추상적•기하학적 구조에서 영감을 받은 조각 작품을 제작한다. 피치의 유년 시절인 1970년대 후반 캄보디아에서는 집단적 학살이 발생했는데, 그때의 경험이 그의 작업에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면서, 시간, 기억, 몸이라는 주제를 다루게 되었다. 깔끔한 형태 마감과 강렬한 감정적 힘이 결합되어 만들어 내는 미묘함과 파워가 그의 조작의 특징이다. 마찬가지로 현지의 소재들을 사용했던 초기 그의 작업이 보다 자유로웠던 반면, 그리드에 기반한 벽 부조(Wall Reliefs) 작업에서는 추상 및 개념화에 대해 점점 더 커 가는 작가의 관심사가 반영되어 있다. 이 작품들은 삼베 끈을 이용하여 대나무를 격자무늬로 조합한다. 여기에 쓰는 삼베는 기존 사용자가 낡은 천과 색감 있는 노끈 조각들을 덧대고, 몇 겹의 엔코스틱(납화법)이 더해 사용했던 쌀포대에서 뽑아낸 것이다. 피치는 “이 그리드 작품들은 있는 그대로의 물질과 그 형상들로 환원되는데, 나에게 이것은 일종의 감정적 증류이자 기억의 정화, 그리고 내게 영향을 미친 것들, 즉 내가 있었던 장소들에 대한 생각의 재현물”이라고 설명한다. 2017년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 《비바 아르테 비바》에서 피치는 바닥에 세워진 조각과 함께 새로운 페이퍼 작업을 선보였다. 이 ‘드로잉’ 시리즈를 구성하는 각각의 작업들은 대나무 막대를 흙 안료와 아라비아 고무의 결합물에 담갔다가 수채화 종이에 반복적으로 누르는 과정을 통해 제작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반복적인 프레싱 과정 이후에 막대에서 잉크가 서서히 사라져 가는 시간을 기록에 담았다. 대나무 막대가 주는 정확한 선에 대한 인상, 실제 대나무의 자연적 결에서 나타나는 불규칙성, 작업대 표면의 변화, 누르는 손의 압력 차이 사이에 미묘한 긴장이 존재한다. 새로운 대형 페이퍼 작업들이 2018년 뉴욕의 타일러롤린스 파인아트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확장들(Expanses)》(2부작 중 첫 번째 전시)에서 대형 조각 작품 <고난(Ordeal)>과 함께 선보였고, <고난>은 최근 싱가포르 아시아문명박물관에서도 전시되었다.